WHY 입냄새, WHAT 구취
-김대복 박사의 종횡무진 냄새 문화 탐험-
현대인의 절반은 입 냄새에 예민하다. 구취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줘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입 냄새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예외가 없다. 대전대 한의대 김대복 겸임교수의 입 냄새 문화 산책을 시리즈로 엮는다.
<1> 임금 앞에서 입 냄새 해소법
옛날 사람은 입 냄새가 현대인 보다 심했다. 구강의 청결상태가 좋지 않고 이비인후과 질환과 내분비 계통의 질환이 많은 탓이다.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서민은 물론이고 의원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고관도 입 냄새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입 냄새가 나는 고위 관료의 가장 큰 고민은 임금 앞에서의 보고다. 입을 떼면 구취가 왕이나 황제에게 전해진다. 그렇다고 입을 열지 않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때의 위기탈출 묘약이 계설향(鷄舌香)이다. 정향(丁香)나무의 꽃봉오리를 말린 약재다. 중국 남부에서 생산되는 정향나무는 매운 맛과 향이 강하다. 방부제로도 사용되는데 진통효과도 커 잇몸염증이나 잇몸통증을 잠재운다.
옛사람들은 항염, 항균, 구충 작용이 있는 정향나무의 꽃봉우리를 말려서 구취제거제로 활용했다. 동의보감에 중국 한나라의 국무총리인 시중 응소(應邵)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가 든 응소는 구강 위생이 악화됐다. 말을 할 때마다 악취가 났다. 임금은 입시한 그에게 늘 계설향을 주었다. 꽃향기가 진한 계설향을 입에 물고 있으면 구취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명나라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계설향은 곤륜산, 광동, 광서에서 나는 백가지 꽃(百花)을 빚어 만든다. 입에 물면 꽃향기가 풍긴다’고 설명했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인 제갈량도 계설향을 사용했다. 그의 문집인 제갈량집에는 위나라 왕인 조조로부터 약재를 선물 받은 대목이 있다. 조조는 정성스럽게 포장한 약재와 함께 글을 보냈다. “계설향 다섯 근을 선물합니다. 저의 작은 정성이니 기쁘게 받아 주소서.” 당시에도 계설향은 고급약재였다. 조조는 적국의 승상인 제갈량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구취제거제인 계설향을 선물한 것이다.
계설향은 조선에서도 입에 올랐다. 임진왜란 시기인 선조 27년(1594년), 조선은 명나라에 파병 요청과 함께 광해군을 세자로 삼는다는 내용을 전하는 사신을 보낸다. 정사는 윤근수, 부사는 최립, 서장관은 신흠이었다.
최립은 압록강을 건너기 전 의주에서 행대(行臺)에 감사해 하는 시를 썼다. 행대어사의 준말인 행대는 지방에 파견돼 공무원의 불법을 가리는 사헌부의 관직이다. 중국 파견 사신단의 일원인 서장관이 임시로 겸한다. 최립은 행대어사인 신흠에게 특별한 정을 느끼는 글을 쓴 것이다.
사람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할까 걱정하는데(相人恒恐失之忙)
그대를 만남과 동시에 굳건함을 느꼈소(唯是逢君意卽强)
나이 들어 어려운 일 맡는 것도 좋지만(白首甘同鄭燭武)
조선에 큰 인물이 없는 게 아쉽소(靑丘欠一郭汾陽)
피 토하는 심정으로 명에 원병 청하러 가는 길(端須共瀝肝頭血)
입속에 계설향 넣는 것 잠시 잊었다오(蹔許休含口裏香)
이제 부터 나이를 따지지 마시오(從此無論一日長)
예부터 참된 벗은 겉치레를 모두 벗었다오(古來交道倂形忘)
당시 최립은 66세, 신흠은 39세였다. 나라의 위기 앞에 먼 사행길을 자원한 최립은 서장관으로 동행한 젊은 신흠의 기상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나이차를 떠나 진지한 만남을 갖자는 시를 쓴 것이다. 최립의 글에는 잠허유함구이향(蹔許休含口裏香)이 나온다. 고대 중국에서 상서랑(尙書郞)이 임금 앞에서 보고할 때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계설향(鷄舌香)을 물고 있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글쓴이 김대복
대전대 한의학과 겸임교수로 혜은당클린한의원 원장이다. 주요 논문으로 '구취환자 469례에 대한 후향적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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